기사단장죽이이라는 한동안 책장에 모셔두던 책을 드디어 꺼내 읽었습니다. 고이고이 모셔오던 책들중에 어떤 책은 손이 먼저가고 어떤 책은 한참동안을 기다리게 만드는지 한번 고민해볼법 하지만 아직은 그냥 손이 가는대로 읽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고, 그동안 그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 왔지만 읽고 서평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을 일 같습니다. 그에 소설 대부분이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관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고 어느 순간에 그 경계를 흐트러트려 버리기 때문에 추상적인 느낌을 가지고 글로 정리해 가는 것은 너무 어려운거 같아요.

 

 

 

 

 

 

그래서 간략하게 읽고 기억나는 느낌 위주로 메모해보겠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나올때 마다 대부분 기대보다 못미친다는 부정적인 평이 많은거 같습니다. 저도 최근에 들어서는 이런 느낌을 조금씩 받게 되는거 같구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여전히 그의 책은 한번 펼치면 술술 읽혀지게 만드는 힘은 있는거 같아요. 중간에 끊을 수 없는... 이 매력 때문에 늘 아쉬움을 남기면서도 반복적으로 신간이 나올때 마다 구입하게 되는거 아닐까 싶네요.

 

이번 소설에서는 하루키의 전작에 쓰였던 소재들이 다소 반복이 됩니다. 최신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해에서 처럼 주요 등장인물 중 한명인 멘시키 와타루는(免色) 면색이라는 한자를 쓰고 색이 없다는 뜻을 지닙니다. 전작을 읽어서인지 하루키에게 멘시키는 어느정도 애정을 가진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가 등장할때는 늘 그의 컬러풀한 패션에 대해서 묘사하고 그의 차들은 화려하며 사건을 이끄는 인물이기도 하구요. 태엽감는새에 등장했던 우물과 비슷한 우물은 아니지만 비슷한 장소가 등장하구요, 1Q84처럼 영혼의 상상을 통한 정사라든지 추상적인 세계관등은 다시한번 비슷하게 등장하기도 합니다.

 

 

 

 

소설의 시작은 강력합니다. 프롤로그라서 작가의 말이겠거니 했던 부분이 소설의 시작으로 이어지고 얼굴없는 남자의 초상화를 부탁하는 장면은 현실에서 소설로 넘어가는 시간을 단축시켜버립니다. 책은 나라는 주인공의 회상입니다. 대략 3년정도 전의 일이구요. 나는 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3년전에 발생했던 기이한일들을 알려줍니다. 아내와의 갑자스런 이혼통보와 순순히 받아들이고 정처없이 떠나는 여행, 여행의 끝에 도모히코의 집에 머물게 되고 우연히 발견한 다락에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작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이후 믿을 수 없는 일들이 하나씩 일어나게 되죠.

 

강력한 시작에 비해 그리고 펼쳐진 이야기의 궁금을 키운 부분에 비해서 그 후의 스토리들은 조금은 아쉬운점이 있습니다. 10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단숨에 읽게 만드는 호흡은 여전하지만 그 안을 채우는 이야기들의 크기는 작아진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루키의 전작들을 꾸준히 읽어 오셨던 분들이라면 아마 이제 다른 이이야기를 들려줄때가 된거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하루키의 신작의 구매를 망설이게 될 거 같구요. 재밌지만 하루키라면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였습니다.

 

 

[기사단중 죽이기 중..]

 

1.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선생님은 무언가를 납득하는데 보통 사람보다 좀 더 시간이 걸리는 유형같아요. 하지만 길게 보면 시간은 선생님 편이 돼줄 겁니다." 롤링 스톤스의 오래된 노래 제목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2. 믿을 수 없는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치에 맞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3. 멘시키가 말했다. " 전 누구나 인생에서 그렇게 대담한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포인트가 찾아오면 재빨리 그 꼬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단단히 틀어쥐고, 절대 놓쳐서는 안왜요. 세상에는 그 포인트를 붙들 수 있는 사람과 붙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마다 도모히코 씨는 전자였죠" 대담한 전환, 그 말을 듣자 문득 <기사단장 죽이기>의 광경이 떠올랐다. 기사단장을 찔러 죽이는 청년.